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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신화의 주역 방재흥(후편)

전 유치위, 조직위 사무총장 방재흥

등록일 2020년06월29일 10시12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계속) 방재흥은 공직자로서의 규범 등을 논할 때 창의력과 관찰력을 중시하며 그 바쁜 와중에도 책을 가까이 한 그였기에 관리자가 되면서 책 속의 진리와 현실 판단을 근간으로 첫째 학연과 지연 등의 연고주의를 철저히 배제했으며 하나 된 공동 목표 속에 자유롭고 소신 있는 사명감을 펼 수 있도록 조직문화 달성의 분위기를 한껏 띄웠기에 이미 행정의 달인, 조직의 조율사, 네트워크의 해결사, 만인의 행복 메신저로서의 단단한 기반 위에 만능 지도자로 우뚝 설 수 있었다. 그의 공직생활 기간동안 받은 대통령, 장관 표창만 수두룩할 정도로 그의 책임감과 통솔력 그리고 행정수행능력을 인정받은 증거이다.

 

 

 

우스갯소리로 “방재흥의 술 한 잔, 밥 한 끼 먹지 않은 사람은 도청 직원이 아니다”라 할 정도로 항간에 소문이 퍼졌으며 그의 월급은 직원들의 단합대회, 인화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삼겹살 파티 자금으로 모두 썼다.

 

강원도가 1999년 평창에서 동계아시안게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김진선 도지사가 폐회사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천명할 때 방재흥은 바로 담당부서장인 관광문화국장이었다.

 


 

이 때에 내적으론 동계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는 기반을 구축하면서 국제 행사인 세계 60여 개국이 참가한 99‘속초국제관광엑스포를 비롯해 대관령국제음악제, 강릉국제관광민속제, 세계물심포니, 원주국제따뚜 등 긁직한 도 현안 대부분이 그의 손에 의해 조련됐다.

 

 

도청 직원들이나 그를 아는 지인들의 한결같은 목소리는 방재흥 총장의 뛰어난 통찰력과 기획력, 지도력 그리고 언론 관계 인사들을 비롯해 특히 國內外 체육 관련 인사들과의 강력하고도 끈끈한 친화력이 평창동계올림픽 신화창조의 성공비결이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 평창, 왜 평창인가? 라는 물음에 선 듯 답이 나와야 하는데 방재흥 총장의 고민이 더 깊어진다. 뭔가 또 다른 차별화 된 평창만의 특징이 있어야 한다는 초점에 창안해 낸 것이 바로 드림프로그램(DreamProgram)이다.

 
 

눈과 얼음을 볼 수 없는, 겨울 스포츠를 접하기 어려운 아프리카나 중동, 동남아시아 등 전 세계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2010년 동계올림픽 유치 공략의 일부로 2004년 이후로 75개국 1.574명의 청소년들에게 혜택이 주어졌으며 매년 1~2월에 10여 일동안 진행을 해 왔는데 이중엔 벌써 올림픽에 자기 나라 국가대표로 출전한 선수도 있다. 국제 스포츠 관련 학계나 단체와 팀에서도 반기는 이 얼마나 창조적이고 획기적인 발상인가 말이다.

 

 

특히 드림프로그램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문화교류를 통해 국가별 참가자들의 관계를 더욱 견고히 해주는 데도 큰 도움을 주었다. 2011년에 시작된 2단계 새로운 드림프로그램은 장애인을 포함한 전 세계 청소년들이 평창에서 더 많은 겨울스포츠 기회를 갖게 됐는데 IOC나 ISF, UIS 등 국제연맹들과 해외미디어, 특히 올림픽위원회(NOC)는 드림프로그램에 대해 “올림픽운동을 전파하고 세계 청소년들간의 우정을 북돋우며 세계평화에 기여 하는데에 매우 탁월한 시작이었으며 사건이었다.” 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하나 바로 그것은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순수 민간 서포터즈인 ‘동사모’인데 글짜 그대로 ‘동계올림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준말이다. 얼마나 순수하고 담백한 단어인가. 유치 활동이 한창이던 2003년 초 유치위원회는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인터넷 서포터즈 가입 이벤트를 실시했다. 이때 100여 명이 서포터즈에 가입했고 이후 점차 가입자가 늘어나면서 ‘인터넷 서포터즈 사이버 홍보단’이 구성되었다.

 


 

순수 자발적 모임인 사이버 홍보단은 온. 오프라인으로 활발한 유치 홍보 활동을 전개했다. D-90, D-60일 등의 이벤트 행사, 홈페이지를 통한 서포터즈 백일장, 서포터즈 발대식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이에 소요되는 경비도 대부분 스스로 충당했다. 이들 사이버 홍보단은 2차 도전 때 다시 활동을 시작하면서 공식 명칭을 ‘동사모’로 명명하고는 그 누구보다 열심히 유치 활동에 앞장섰다.

 


 

방재흥 사무총장은 2014년 3월 퇴직공무원들의 최대 모임인 강원도지방행정동우회장에 선출된다. 그의 취임 첫 일성(一聲)은 “회원들과 함께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과 발전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피력했다.

 

2修가 끝나고 어떤 우여곡절이 닥치면서 찬바람을 맞기도 했지만 방재흥 본인만의 타고난 철칙대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하던 <책임성-창의성-저돌성>의 원천성을 품으며 이를 바탕으로 좌고우면(左顧右眄)치 않으며 정도(正道)를 향해 달렸다. 이는 그의 좌우명처럼 새겨왔든 ‘시작과 과정의 정의성’을 부여했기에 그는 늘 견득사의(見得思義:얻을 것이 있으면 먼저 그것이 옳은지를 생각하라)정신에 입각해 자신의 주위부터 돌아본다. 책인지심책기(責人之心責己; 남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탓하라)란 고사성어(故事成語)를 마음에 새기며 강원도지방행정동우회장에 오르면서 그의 다짐처럼 자신을 다독이며 국내외 발길 닿는 대로 평창마케팅에 주저치 않는다. 그 특유의 사명감의 발로(發露)이다.

 


 

 

 

 

 

 

 

 

 

 

방재흥은 자다가도 문득 프라하의 악몽을 생각하면 벌떡 일어날 정도라 했다. 어떤 신문 기사는 프라하 힐튼호텔에서 그 날 개최지 선정이 발표되던 날 그는 어린아이처럼 펑펑 눈물을 흘리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고 목격담을 쓰기도 했다. 프라하 대전 누가 봐도 이길 수 있는 분위기였는데 말이다. 분하고 억울한 가슴 칠 일이었다. 허망했다.

 

1차 투표에서 평창이 1위였다. 투표자인 IOC위원 111명 가운데 51표를 얻었다. 밴쿠버가 40표, 잘스부르크가 16표를 얻었고 무효표도 4장이 나왔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과였다. 자크로케 위원장도 발표문을 받아보더니 잠시 멈칫하면서 놀라는 표정이었다. 처음 유치신청을 할 때까지만 해도 이름조차 없던 평창이 자타가 공인한 1위 후보였던 케나다 밴쿠버를 큰 표 차이로 누르고 1위로 올라선 것은 이변 중 이변이었다. 오죽하면 어떤 해외언론은 생소한 평창을 평양으로 오보(誤報)도 냈을까. 어떻든 그날의 분함에 며칠 몇 날 잠 못 이루는 밤이었다.

 

 

 
 

이렇듯 1차 투표에서 유효 투표수의 과반수를 얻은 도시가 나오지 않을 경우 최저 득표 도시를 탈락시키고 상위 2개 도시를 놓고 2차 투표를 실시하는 방식이다. 2차 투표 결과는 밴쿠버가 56표, 평창이 53표, 단 3표 차이였다. 나중에 분석해본 결과, 잘츠부르크를 지지했던 16표 전부가 밴쿠버로 이동한 반면 평창의 추가 득표는 단 2표에 불과했다. 유럽의 표가 묶음으로 밴쿠버로 이동한 것이다. 2012년 하계올림픽 유치와 관련한 이해관계가 그 한 배경이었다. 하나의 대륙에 동. 하계올림픽을 다 주려 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밴쿠버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면 다음 하계올림픽 유치는 유럽이 유리하고 평창이 유치하면 당시 뉴욕이 유리하다는 게 유럽 IOC 위원들 판단의 한 단면이었던 것이다.

 


 

이런 것들을 들여다본다면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를 넘어서 대륙 간 이해관계 흐름은 이제 보이지 않는 무서운 손이 되었다 생각하면 이 얼마나 아찔하고 소름끼치는 순간이었겠는가? 우리 모두 절실하게 느꼈을 프라하와 과테말라 두 번의 악몽이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리기 전인 2018년 1월1일 북한의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느닷없이 2018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깜짝 발표하면서 김여정을 특사로 한 대표단과 공연단을 파견했다. 그들은 2월 9일 개막식과 환영만찬까지 참석하는 등 국내외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북한의 대표단 참가가 온통 평창올림픽의 톱 이슈가 되었다. 그동안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갑자기 이웃 잔치상에 끼어든 객이 주인노릇을 하면서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랄까? 이런 생각은 우리가 남북한 단일팀구성, 성화코스 북한경유 등 평창동계올림픽을 통한 남북협력을 꾸준히 북한에 요구했는데도 묵묵부답이었다가 느닷없이 골목길에서 튀어나오듯 개막식 40여 일을 앞두고 참가를 통보해 왔기 때문이다.

 


 


 

북한대표단과 공연단의 느닷없는 참가로 인해 개막식 참석 초청자 범위가 분명히 조정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1999년에 평창동계올림픽유치의 첫발을 내 디뎠을 때부터 2011년 유치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더반에서 2018년 대회를 유치할 때까지 줄 곳 올림픽유치의 핵심 자리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그에게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개막식을 안방TV를 통해 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냉혹한 현실에 참담함을 금치 못할 현실이다. 북한에서 온 인사들과 참가자들을 로얄블록에 배치하다보니 좌석배치가 여의치 않았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어쨌든 2년이 지난 지금 북한이 그 당시 들고 온 평화의 메시지를 잘 지키고 있다면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남북평화공존에 크게 기여한 올림픽으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을 치른 지 2년이 넘었다. 그 후 북한은 미사일 십 수여 발을 쏘아 올리면서 공개적으로 전의를 북돋으며 한반도의 긴장을 계속 조성하고 있다. 급기야 며칠 전엔 느닷없는 삐라 문제를 들고 나오면서 평창에 왔다 갔던 김여정이 안면을 몰 수 하며 막말과 험한 말만 골라가며 우리 정부에 총공세를 취하더니 급기야는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개성에 있는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시킨 것이다. 이제 남과북은 최악의 상황에 이르면서 다시 올림픽 전(前)의 상황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러나 이 한 가지, 국제사회가 알아주는 만큼의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전 세계인이 혀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결국 온갖 국력과 열정을 다해 유치한 2018평창동계올림픽이 잠시동안이었을 망정 그들의 ‘평화 쑈’ 무대가 되었던 것을 상기하면 씁쓸함과 비통함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러나 동방의 나라 대한민국이 아시아 최초로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스포츠 최강국의 기치를 높이 들며 정상에 우뚝 선 기적과 같은 현실에 부응하며 그 중심엔 언제나 江原人이 서 있었다는 자부심과 함께 2018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성공에는 방재흥 총장의 치밀한 전략과 마인드가 밀알이 됐다는 사실에 찬사와 공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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