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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출신 ‘영원한 스포츠앵커 최동철 박사’

스포츠의 장인(丈人) 바로 영원한 스포츠 앵커이며 스포츠 평론가 최동철 박사

등록일 2020년07월09일 17시19분 트위터로 보내기 싸이월드 공감 네이버 밴드 공유


 


 

지난 2013년 타계한 미국의 UPI통신 ‘헬렌 토마스‘ 기자는 1961년 여성 기자로는 최초로 백악관 출입을 했던 인물로, 케네디 대통령부터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약 60년간 무려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한 백악관 출입 기자의 전설이자 세계 언론인들의 귀감이 되었다.

 

차장, 부장급 기자만 되어도 취재현장과 거리를 두는 우리나라 언론문화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존경스러운 모습이다. 이런 현실은 기자들의 개인적인 자질이기보다는 한국 언론계 전반에 만연된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그러나 오랜 관례를 깨고 한국판 ’헬렌 토머스’ 기자의 등장을 예고,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춘천 출신 영원한 스포츠 앵커 최동철 박사다.

 


 

1970년 TBC(동양방송) 공채 7기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입문한 뒤 1972년부터 스포츠기자로 첫발을 내디딘 후 올해로 48년째 국내외 스포츠 현장을 누비며 취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최동철 박사는 8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강골임을 감안한다면 아흔살 넘어서도 취재 활동이 가능하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1982년부터 88서울올림픽 때에는 매일 50분짜리 KBS ‘9시 스포츠’를 진행했으며 스포츠 취재부장 시절이던 1994년 가을 개편 이후 KBS1 9시 뉴스 직후 15분짜리 ‘스포츠 뉴스’를 신설해 본인이 직접 진행하기도 했는데 이때 스포츠뿐 아니라 사회 교양 등 전 분야의 프로그램을 총망라한 시청률 33%, 1위의 대기록을 달성해 당시 KBS 홍두표 사장으로부터 특별 상금을 받은 일은 한때 방송가의 화제로 떠오르기도 했다.

 


 

1991년 일본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리의 현정화와 북한의 이분희가 한 조를 이뤄 중국을 꺾고 우승을 했다는 낭보를 현장에서 전하고는 최동철 기자는 곧바로 평양으로 날아간다. 바로 포르투갈 청소년축구대회 출전 남북한 단일팀 구성을 위한 평가전을 취재하기 위해서다. 정말 바쁘다 바빠^^

 

그런데 얘기는 여기부터다. 판문점 남북 분단선을 넘어설 때 최동철은 당일 ‘스포츠뉴스’의 리포트 물 마지막 클로징멘트에서 아주 비장하면서도 약간 흥분된 어조로 “제가 얼마 전에 끝난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 여자 복식조에서 우승한 대한민국의 현정화 선수가 같은 조 파트너였던 북한의 이분희 선수에게 보내는 편지를 휴대하고 평양으로 떠납니다. 본인에게 꼭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산전수전(山戰水戰) 다 겪고 강심장이가 된 최동철 대기자였지만 텔레비전에서 보는 그의 목소리는 분명 떨렸다.

 


 

그리하여 평양 5.1경기장에서 벌어졌던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우승 귀국 개선 한 선수단 환영 군중대회에서 최동철 대기자는 이분희 선수에게 현정화 선수의 개인 안부 편지를 전해줄 수 있었다. 지금 회고컨대 그땐 김일성이 살아 있을 때라고 하니 벌써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인가 싶어진다. 여기서 한 가지... 평양에 도착한 취재진을 안내하기 위해 그 당시 조평통 위원이라던 김만석이란 건장하고 잘생긴 친구가 안내원으로 나왔는데 말을 나누다 보니 자기는 김책 공업종합대학을 나왔으며 6.25전에 아버지가 춘천 서면에서 농사를 지으셨다고 소개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래도 그 당시 부유한 만석꾼의 집안에서 태어나 자기 이름을 김만석으로 작명해 준 게 아닌가란 예감이 든다.”라고 했던 그 김만석이란 안내원이 새록새록 떠 오른다고 되뇐다. 70년 전의 일이니 그 또한 까마득한 옛날얘기인 듯싶다. 최동철은 서면에 가서 한번 찾아볼까도 했는데 찾아본 들 뭣 하겠나... 남북 연락사무소도 폭파시켜 버리는 이 마당에... 부질없는 생각으로 마무리해 본다.

 

이 밖에도 최동철 박사에겐 일화가 많다. 지난 2008년 6월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한국과 북한과의 경기에 앞서 대한축구협회에 프리랜서 기자로 정식 등록했다. 2000년 KBS를 떠나 프리랜서를 선언한 지 8년 만의 일로 축구 협회에 프리랜서 기자 신분으로 등록한 것은 최기자가 처음이란다.

 

 

줄곧 한 우물을 파다 보면 끝이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파도 파도 끝이 보이지 않는 춘천 토박이 춘천 사람, 스포츠의 장인(丈人) 바로 영원한 스포츠 앵커이며 스포츠 평론가 최동철 박사란 애칭이 그의 명찰이 됐다. 그의 학구열은 또한 그 누구도 따라올 수가 없다.

 

춘천고를 나와 그의 모교 연세대학교에서 석사까지, 그리고 그의 고향 강원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그는 언제 어디서나 책과 싸웠으며 시간을 쪼개 모교 도서관과 공공 도서관을 자주 찾아 공부에 몰두하면서 모교와 지역사회 지자체와 기관에 획기적 발전방안을 제시해 도청이나 시청, 교육위원회 수장에게 거침없는 창의적 프로젝트를 제안한다.

 


 

지금도 하루 TV, 라디오를 합쳐 8개 방송에 출연하는데 그것도 대부분 생방송이다. 그는 생방송 체질이다. 미리 짜놓거나 틀에 박힌 방송은 질색이다. 녹화방송은 시시한가 보다. 1초 일각을 다투며 짜릿하며 실수가 없어야겠기에 그래서 그는 항상 생방송처럼 스릴을 만끽하며 확실한 게 좋다며 시간을 즐기고 있다. 그는 요즘도 스포츠 관련 정보를 익히느라 매일 8~9시간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올 들어 코로나 사태 이후 프로야구를 비롯해 프로축구 등 각종 대형 스포츠 경기가 무관중으로 치러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참 세상 살다 별일”이라며 “엄격히 스포츠도 제도권 안에서 운영되는 만큼 사회적 추이와 세계적인 안목에서 이뤄지는 계산법에 늘 적응해야 된다.”라고 강조한다. 역시 스포츠평론가다운 그의 통찰력이다.

 


 

그 바쁜 와중에도 그는 고향을 자주 찾는다. 각종 경조사는 한 번도 빠짐이 없고 또 선후배 모임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인화와 친교의 달인이다. 어물쩍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대충이란 단어를 허용치 않는 사람이다. 그를 아는 학교 선후배들은 그의 확실하고 칼날 같은 태도에 찬탄을 금치 못한다. 아닌 듯싶은 건 아니다. 그에게 1년 선배나 연배에겐 깍듯한 선배님이다. 형님도 아니다. 그러나 단 몇 달이라도 후배들에겐 쥐 잡듯 한다, 잘못이 있으면 용서가 안 된다. 내가 보더라도 선후가 확실한 사람이다. 아마 해병대 출신이라 의리와 절도가 몸에 밴 듯하다.

 


 

그는 자신은 제쳐두고 남의 일에 항상 앞장선다. 그래서 오해도 많이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만치 남의 눈을 의식치 않는다는 얘기다. 참 신나는 사람이다. 한때는 이 지역 국회의원까지 나왔으나 고배를 마신다. 내 고향을 위해 기회가 닿으면 봉사하겠다는데 그게 뭐 씹힐 일이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같은 선배 후보자에게서 미움도 받았다. 그는 지금도 한국 정치가 바로 서는 모습에 동참하고 싶었다고 그 당시의 감회를 떠 올리면서 바람과 구름처럼 지나치면 그만인 것을 사람들은 그걸 잡으려 혼비백산 애쓰고 있다고 힐난하게 세평(世評)도 주저치 않는다. 그는 한마디로 뒤 끝이 없는 사람이다.

 


 

최동철은 지금도 기억한다 “집안이 원체 가난해 빨리 출세해서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일구월심 공부만 했다.”라고 한다. 그의 목표는 고등고시였는데 그 당시에는 보통고시가 유행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는데 그는 공부를 썩 잘해 주위에선 곧 최씨 가문에 용 날 거란 기대가 컸다고 한다.

 

해병대 156기로 자원입대해서 겪은 지옥훈련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단초가 됐다. 그는 병영 방송과 학구열에 불타 틈만 나면 책을 읽고 공부해서 당시 해병대사령부 정채호 정훈참모의 신임이 대단했었다고 추억을 더듬는다. 그분의 후원으로 방송의 길로 나설 수 있었으며 군인의 신분인데도 물심양면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고 지금도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최동철은 해병대를 제대하자마자 철도방송과 그 후 대학 3학년 때 동아방송(DBS)의 연이은 합격으로 방송가의 탄탄대로에 무한질주... 드디어 1970년도에 당시 동양방송인 TBC 7기 아나운서로 합격해 2년 뒤 스포츠기자로 전직한 뒤 80년 언론통폐합 때 KBS와 합치면서 본격 체육부 데스크와 스포츠 앵커로 활약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스포츠 大記者 영원한 스포츠 앵커로 자리매김한 시초를 일구었다.

 

최동철 박사는 지금도 회상한다. 학창 시절 생활에 쪼들려 학비는 물론 끼니마저 걱정해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 학업의 중도 포기보다는 악착같이 인내하며 더 열심히 공부해 돈을 벌어 집안을 일구자는 일념으로 열심히 공부만 했다고 한다.

 

2019년인 지난해 7월 서울 프레스센터에선 ‘100년 맞는 한국체육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에 대한 국민 대토론회가 CDC 스포츠컨설팅 주최로 열렸다. 기라성 같은 왕년의 스포츠 대스타들이 참석해 열띤 공방을 벌였다. 지난 2~3년간 선수들에 대한 성희롱과 성폭력 등 일명 미투 스캔들에 휩싸여 체육계가 온통 쑥대밭이 돼 있었다. 이런 풍파가 계속되던 즈음에 2019년 1월 청와대는 획기적인 한국스포츠 전환을 위한 강경 대책안을 발표한다. 각종 물의의 중심에 선 성적 지상주의의 폐해 등 우려에 대한 대안으로 국제대회 메달리스트에 대한 연금 지급폐지와 국가대표선수촌 합숙소 폐지, 그리고 전국소년체육대회 폐지 등 메가톤급 중대 발표였다. 여기에 문화체육관광부 스포츠 혁신위원회의 중대 방안으로 선수들의 학습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낮 시간 훈련을 금지하며 방과 후 운동시간을 배려하면서 주중 대회를 금지하고 주말 대회 개최 방안 등이 담긴 정부의 즉흥적 대안에 대한 일각의 반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항상 문제 시 돼온 엘리트 체육과 생활체육 사이의 괴리 현상이다. 국위선양의 방편으로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될 우려도 있거니와 경쟁 사회의 철칙처럼 돼 왔던 선례가 깨지면서 생기는 파문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다. 또 올림픽이나 세계대회에서 그 어려운 메달을 따내 우승한 선수들로 인해 스포츠 강국의 이미지를 심은 자부심을 어떻게 보상하며 대변할 것인지의 여러 문제점. 이런 대혁신을 앞세운 정부의 강경 방침에 체육인들의 걱정과 우려, 그리고 반발이 보통이 아니었다.

 


 

이날 토론회에선 정부 방침에 날 선 공방이 계속되면서 성적 지상주의의 여파가 국가대표 선수 양성에 해악은 물론 전반적인 재편이 있어야 된다는 의견 등 여러 갈래의 발전 방향이 제시되기도 했던 바람직한 토론회였다.

 


 

체육계에 도사리고 있던 선수들에 대한 폭행과 미투 문제가 고질적인 병폐로 그간 몇 가지 사례가 노출돼 단죄되기도 했지만... 그런 가운데 며칠 전 경주시청 소속 철인 3종 경기의 최숙현 선수가 지도자의 가혹한 폭행을 견디다 못해 투신한 사건은 아직도 만연되고 있는 체육계의 병폐로 남아 있음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스포츠평론가 최동철 박사는 수시로 연수원이나 지도자 아카데미에서 강연을 통해 주창(主唱)하는 바 이런 엄청난 사건의 이면에는 체육지도자와 선수 간의 소통 부족에서 오는 살인적 현상으로 “이상적인 교육과정을 거치지 않은 지도자의 인성 부족에서 오는 단절 현상”이라고 수차 반복해 지적했지만 연이어 이러한 끔찍한 사건을 볼 때마다 가슴 미어지는 아픔을 금할 수 없다고 낙담한다.

 

최동철 대 기자는 강연 요청이 오면 시간이 되는 한 응한다고 했다. 태릉선수촌과 진천 국가대표 선수촌, 체육진흥공단 연수회, 체육지도자 연수회, 공무원교육원과 일선 학교 체육지도자 강습회, 대학과 중고등학교 선수 지도사 강습회에 연사로 초빙돼 무수히 많은 강연을 실시하면서 일련의 이런 비극적 상황이 재연되는 현상에 대해 최 박사는 한마디로 체육지도자의 인성(仁性) 부족을 첫손에 꼽는다.

 


 

 

그래서 최박사는 체육지도자와 선수 간의 소통 부족에서 오는 이런 일련의 불협화음을 잠재울 수 있는 것은 오직 지도자의 인성, 즉 사람 됨됨이인데 이에는 일곱 가지 덕목을 나열해 주입 시키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7가지 원칙이란 바로 인성과 재능, 헌신과 배려, 자신감과 소통, 그리고 일관성이라고 강조하면서 우리나라 체육지도자 각자는 인성교육을 통해 꼭 이 부분을 통감해 몸에 배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한 세기, 100년을 맞은 대한민국 스포츠가 당당히 세계 스포츠 강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요체는 국력과 결부되는 것이며 이에는 정부와 국민의 성원, 그리고 지도자와 선수들의 소명과 열성이 수반돼야 한다고 믿는다.

 

특히 반백 년을 스포츠 취재로 외길 인생을 걸으며 대한민국 체육발전에 양분과 소금 역할을 하며 한 우물을 판 스포츠 평론가 최동철 박사께 격찬의 말씀과 함께 서두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100세 시대에 ‘헬렌 토마스’기자와 같이 90이 훨씬 넘도록 현업에 머물러 주기를 기대해 보면서 최동철 大記者의 건운(建運)을 빌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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